‘인간의 존엄성’ 훼손하는 적폐 청산하길

2018.07.06
2018.07.06

이성재
변호사,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새 정부 출범 한 달이 지났다. 오늘 나는 새 정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우리 사회의 가장 오래 묵은 폐단과 부끄러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식민지배와 전쟁, 군사 독재와 경제 위기를 극복하여 가히 세계적인 수준의 국가가 되었지만 정신건강 영역은 아직 후진국 수준이다. 인구 1천명당 정신병원 병상 수는 0.91개(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0.59개), 평균 입원 기간은 197일(프랑스 36일, 이탈리아 13일)로 입원 중심의 구패러다임에 머물고 있다. 정신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한 서비스는 찾아보기 힘들며 보통의 장애인이 이용하는 복지관이나 활동지원서비스도 그림의 떡이다.

정신병은 때때로 환자의 삶 전부를 삼킨다. 정신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가족과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기억 속에서 삭제되기도 한다. 정신병원과 요양시설에는 그런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육일오, 오일삼과 같이 시설에 버려진 날짜가 이름이 되고, 10년이 넘게 주민등록번호조차 없이 사는 사람들이 흔하다. 가족이 있는 사람들의 사정도 다를 바 없다. 20년 전 정신요양시설에 강제입소된 아버지를 면회는커녕 연락도 하지 못하는 아들도 있고,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아들이 유학 가 있다고 30년간 다른 자식들과 며느리를 속인 아버지도 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정신장애인은 누군가를 해칠 가능성이 없다. 다만, 우리 사회가 돌봄체계나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은 채 그들을 한쪽으로 “치워놓은” 것뿐이다. 여기에, 중대범죄가 발생하면 “정신병자의 소행으로 의심된다”는 언론의 호들갑이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요양시설에서 30년 청춘을 보내고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있다. 그는 우리 사회의 이기심과 국가 권력의 무책임함, 전문가의 외면 때문에 그곳에 있는 것이다. 그가 사생활이 전혀 없는 그 좁은 시설에, 본인의 의지에 반하여 격리되어 있는 동안 우리는 그를 제대로 치료하여 그의 삶을 회복시키려는 고민을 단 한 번이라도 치열하게 해 본 적이 있었던가. 과연 이것이 유일한 해법이었나. 우리는 진실로 “인간의 존엄성”을 추구하고 있는가.

강제입원 제도 개선을 위해 ‘정신장애인복지지원법추진공동행동’이라는 긴 이름의 인권단체와 장애인단체 연합이 정신보건법 개정을 요구하고 위헌법률 심판청구를 제기하였다. 수차례 시도에도 번번이 실패하였다. 그러다가 작년 헌법재판소는 정신병원 강제입원 조항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놓고 국회는 정신보건법을 전부 개정하였다.

20년 만에 개정된 정신보건법은 정신장애인이나 인권단체, 정신과 의사들을 완전히 만족시키는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구법에 비해 “상당히 진일보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상 50년 이상 지속한 정신의료계의 구질서를 흔드는 것이니 정신과 의사들의 반발이 크다. 그런데 그 반발의 내용이 밥그릇을 염려하는 것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필자는 ‘정신건강복지법’에 반대하는 일부 정신과 의사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우선 사실관계가 명확지 않다. 근거 없는 선정적 보도를 사실로 전제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든다. 둘째, 정신장애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견해에 편승한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든다. 셋째로, 환자의 치료와 인권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정신과 의사가 새 법률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과 정신장애인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구별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전적으로 정신과 의사의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정신장애인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가난하며 가장 차별받는 집단이다. 그 아픔을 대변해 주는 사람도 없어 대통령 공약에도 한 줄 반영되지 못했다. 새 정부에 바란다. 미처 자신의 어려움을 드러내 주장하지도 못하는 정신장애인에게 관심을 가져달라. 적폐가 청산되더라도 그 안에서 인간이 죽어간다면 그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새 정부는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중에 가장 첫째로 정신장애인 문제를 상정한다 하더라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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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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